희고 노란 옷을 입은 책 읽는 여인(191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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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스의 그림에서는 책 읽는 여인이 종종 등장한다. 1차 대전 직후 니스에 정착한 마티스가 머물던 메디테라네 호텔에서 그린 작품이다. 여인의 눈매, 바닥의 장식적인 선묘가 이후의 작품 경향을 예고한다. ⓒSuccession H. Matisse. Paris. 2005 |
니스의 실내 풍경(192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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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스의 ‘니스의 실내 풍경, 미스 마티스와 미스 다리카레르’. 작가의 딸 마게리트와 그의 친구가 모델이다. 색채는 좀 더 밝아지고 벽지와 블라우스의 장식적 모티브가 인상 깊다. ⓒSuccession H. Matisse. Paris. 2005 |
망사 치마를 입고 앉아 있는 오달리스크(192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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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마티스의 드로잉과 석판화는 비록 색채화는 아니지만, 이번 전시의 또 다른 볼거리다. 중국 종이 위에 석판화. ⓒSuccession H. Matisse. Paris. 2005 |
오세아니아, 바다(1946~194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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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 3.87m, 높이 1.73m에 달하는 마티스 만년의 대작이다. 1932년 3월부터 두 달간 남태평양 타히티를 여행한 뒤 15년 만에 착수한 작품이다. 실루엣 처리로 표현된 꽃과 새, 물곡, 해조류 등이 자유롭게 나열되었고, 파도를 연상시키는 테두리가 둘러싸고 있다. ⓒSuccession H. Matisse. Paris. 2005 |
샤뚜의 다리(190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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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 드랭의 작품 ‘샤뚜의 다리’는 쾌활하고 원색적인 색채, 세부 묘사를 생략한 화풍으로 야수파 태동기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
라플라자에서, 난간에 있는 여인들(1910~191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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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 반 동겐의 인물은 세부묘사를 생략하고 원색적인 색채를 강조했으며, 난간에 걸친 동양풍 무늬 천을 그려 넣어, 시선이 자연스럽게 대각선으로 흐르게 했다. ⓒADAGP. Paris-SACK. Seoul. 2005 |
7월 14일(1912년 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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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울 뒤피의 야수파 시기 그림 중 대표적인 이 작품은 프랑스 대혁명 기념일인 7월 14일의 흥겨운 분위기를 그린 것이다. |
아뜰리에(1940년 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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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울 뒤피의 후기 작품 경향을 보여주는 그림이다. 수채화처럼 맑고 밝은 색채에 리드미컬한 선묘로 자유분방한 느낌을 준다. |
아뜰리에의 집시 여인(190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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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망갱은 주로 아내를 모델 삼아 누드를 그렸다. 청록색 그늘, 연보라색의 평평한 색면이 야수파 시기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누드를 파란 윤곽선으로 그리는 방식 또한 망갱의 다른 작품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형식이다. |
정물화(1956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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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대부분의 야수파 화가들이 풍경 중심의 그림을 그린 반면, 모리스 드 블라맹크의 경우 흔치 않게 정물화도 볼 수 있다. 강렬한 사과의 색이 시선을 집중시킨다. ⓒADAGP. Paris-SACK. Seoul. 2005 |
여인과 꽃들(1891년 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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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보나르. 일본 판화와 인상주의의 영향이 짙은 부채 그림을 만들어냈다 |
루드밀라(1930년 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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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주 루오 역시 초창기 야수파에 합류했었다. 굵고 검은 윤곽선 속에 우수 담긴 인물 묘사가 그의 특징이다. ⓒADAGP. Paris-SACK. Seoul. 2005 |
창가의 바느질하는 여인(190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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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스 마리노의 그림은 전형적인 야수파의 도상과는 조금 다르나, 색채의 자유분방한 사용 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
전시 전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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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관람객이 라울 뒤피의 ‘아뜰리에’를 감상하고 있다. 전시장 내부를 마치 야수파의 그림처럼 파랑, 주황, 노랑 등 원색적인 색채로 칠한 독특한 구성 방식을 보여준다. |
1905년 10월 18일, 파리 샹젤리제의 그랑 팔레에서 제3회 살롱 도톤느가 근 한 달간의 일정으로 막을 올렸다. 397명의 작가가
1600여 점의 작품을 출품한 대규모 가을 살롱전으로, 당대 프랑스 최대의 미술전시라 부를 만했다.
이 전시에서 미칠 듯 타오르는
색채, 강렬하고 거친 붓터치를 선보인 파격적인 그림들로 유독 눈에 띄는 곳이 있었으니, 훗날 ‘야수들의 우리’로 통칭된 곳이자,
‘야수주의(Fauvism)’라는 명칭이 태동한 제7전시실이다.
울긋불긋한 색채와 거친 묘사로 일관하는 그림들 속에는 당시 알베르
마르케의 고전적인 여인 조각상이 있었는데, 주변 그림들과는 당연히 어울리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난감한 상황에 둘러싸인 마르케의
조각을 본 당대의 유명 평론가 루이 보셀은 후에 이렇게 평했다고 한다. “이건 꼭 ‘야수들의 우리’에 갇힌
도나텔로 꼴이군.”
르네상스 시대의 고전주의적 조각으로 유명했던 조각가 도나텔로의 이름을 빌린 것은 사실적인 마르케의
작품과는 대조적인, 당시로서는 조야하게만 보였던 ‘과격한 그림들’을 비꼬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보셀의 빈정거림 섞인 평가는 후대에
‘야수주의’라는 명칭을 이끌어냈다.
야수주의 회화는 매너리즘에 빠진 고전주의 화가들에겐 거부감으로 다가왔지만, ‘미술 혁명’을
꿈꾸었던 작가들에게는 무엇보다 반가운 움직임이었다.
조직적인 학파가 아니었기에 불과 3~4년 반짝 등장했다 사라졌을 뿐이지만,
오늘날까지도 이들의 그림이 의미 있게 평가되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마티스와 불멸의 색채화가들’전은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야수파가 태동한 당시 미술계의 경악을 잠시나마 맛볼 수 있는 전시다. 특히 야수파에서 발전해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간 작가들의 강렬한 원색과
보색 대비, 과감하면서도 거침없는 붓 터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번 전시는 야수파의 핵심 인물인 마티스를 중심으로, 당시
야수파에 몸담았던 화가들의 작품을 망라했다.
프랑스 생 트로페 미술관 소장품을 중심으로 파리 퐁피두 센터 근대미술관, 파리
시립미술관, 니스 마티스 미술관 등 유럽 각지의 야수파 작품 소장처 25개소에서 공들여 대여한 작품들이다.
단, 마티스의 유화는
전성기의 대표작이라기보다 야수파 이전 혹은 이후의 범작 위주여서 약간 아쉽다. 그러나 유화와 함께 전시된 드로잉과 석판화 20여 점은 동양적
모티브와 장식적 화면 구성에 심취했던 마티스의 관심사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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