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헌 서울백병원 비만센터 소장
2000년 7월부터 1년간 필자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UNC)에서 메디컬 저널리즘을 공부했다. 세상을 온통 뒤덮은 키 큰 나무들과 그 속에 푹 파묻힌 건물과 도로와 사람들. 녹색 물감 하나면 그려낼 수 있는, 그렇게 푸르고 깨끗하며 살기좋은 작은 도시가 바로 UNC가 있는 채플힐이다. 그곳에서의 안식과 평안과 추억은 지금도 가슴이 알싸하게 그립다.
그러나 잊혀지지 않는 채플힐의 영상 중 하나는 마치 하마처럼 거대하고 기형적인 몸집 때문에 제대로 걷지도 숨쉬지도 못하는 뚱보들의 모습이다. 필자가 통학하던 노선 버스의 한 흑인 운전자가 생각난다. 그 큰 엉덩이를 도무지 얹을 수 없어, 특별히 개조한 운전석에 앉아 운전했던 그녀의 체중은 족히 200㎏은 넘는 것 같았다.
“굿 모닝”이라고 말할 때의 짜증스런 얼굴과 가쁜 숨소리가 지금도 느껴지는 것 같다. ‘월 마트’ ‘푸드 라이온’ 같은 할인매장이나 식료품점에서도 그렇게 씩씩거리며 뒤뚱뒤뚱 걷는 사람들이 많았다. ‘21세기 인류 최대의 적은 비만’이라는 보건학자들의 경고를 그곳에서 체감할 수 있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비만을 세상에서 가장 빨리 확산되는 전염병이라고 규정한다. 비만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나 세균이 있는 것도 아닌데 전염병이라 부르는 이유는 “좀 더 쉬자, 좀 더 눕자, 좀 더 편해지자”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을 매개로 비만이 전염되기 때문이다.
비만은 과거 특권과 풍요의 상징이었다. 과거 민초(民草)들은 제대로 못먹고 죽도록 일만해서 살이 찔 수가 없었다. 그러나 산업과 과학의 발달은 보통 사람에게까지 그같은 풍요를 가능케 했고, 그 결과가 비만이란 재앙으로 나타나고 있다.
국제비만특별조사위원회(IOTF)는 과(過)체중 또는 비만인 사람이 17억명을 웃돈다고 2003년 초 발표했다. 이는 세계 인구의 약 30%에 해당한다. 심지어 최빈국(最貧國)인 아프리카 국가에서도 비만인구가 증가하고 있다는 게 IOFT의 경고다. 자동차, 엘리베이터, 전화기, 리모콘, 컴퓨터와 같은 ‘비만 바이러스’를 매개로 세기의 역병(疫病)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비만의 재앙은 더 이상 수수방관해도 좋은, 먼 나라의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도 전체 성인의 약 30% 정도가 비만이며, 비만인 비율은 매년 3% 정도씩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문옥륜교수가 서울시민 3800명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체질량지수(BMI)가 25가 넘는 비만인이 32.7%에 달했다. BMI란 ‘체중(㎏)을 키(m)의 제곱으로 나눈 값’이다. 또 말로만 듣던 ‘베리아트릭 수술’도 2003년 초 국내에 도입된 이래 최근 크게 확산되고 있다. 베리아트릭이란 살을 빼는 최후의 수단으로 음식을 적게 먹기 위해 위의 90% 정도를 잘라버리는 수술이다.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엔 체중이 수백㎏씩 나가는 ‘수퍼 뚱보’를 거의 볼 수 없다. 그래서 “비만 재앙이 온다”는 경고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이 많을지 모른다. 그러나 서양과 동양은 비만의 기준부터 다르다. 서양인은 BMI가 25 이상이면 과체중, 30 이상이면 비만이지만, 한국인은 23 이상이면 과체중, 25 이상이면 비만으로 분류한다. 대한비만학회가 이렇게 규정한 이유는 동양인은 체지방 비율이 높아, 같은 비만도의 서양인보다 심장병 등 비만으로 인한 합병증 발생 비율이 훨씬 높기 때문이다.
비만을 재앙이라 부르는 이유는 만병의 근원이 되기 때문이다. 당뇨병, 고혈압, 고지혈증, 동맥경화, 심장병, 뇌졸중 등의 발병에 비만이 직접적으로 관련돼 있다는 것은 이제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심지어 소화기질환, 호흡기질환, 관절염 등 뼈질환, 발기부전 등도 비만과 직접 간접적으로 관계가 있다. 최근엔 대장암, 담낭암, 식도암, 유방암, 신장암, 자궁내막암 등 각종 암의 발병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가 쏟아지고 있다.
따라서 살을 빼야 한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까지 살을 빼야 할까? 한국인의 정상체중은 BMI 18.5~22.9다. 23~24.9는 과체중, 25~29.9는 비만, 30 이상은 고도 비만이다. 자신의 비만 여부를 알기위해서는 BMI값을 측정하는 공식 ‘BMI 값=체중÷(키×키)’에 따르면 된다. 예컨대 키 175㎝에 몸무게 80㎏이라면, BMI값은 공식에 수치를 대입해서 80÷(1.75×1.75)를 해서 26.1이 된다. BMI값 26.1이면 비만이다.
다음으로 이 사람의 정상 체중을 알아보자. 그는 BMI값 23까지 살을 빼야하므로, BMI 23에 해당하는 체중을 알아보려면 ‘(키×키)×23’을 하면 된다. 키가 175㎝인 사람은 ‘(1.75×1.75)×23’을 해서 나온 값 70.4㎏이 BMI 23에 해당한다. 따라서 몸무게가 80㎏인 사람은 9.6㎏의 살을 빼야한다. 단지 남자의 경우 BMI가 23~24.9 범위라도 허리둘레가 90㎝를 넘지 않으면 정상체중 범위에 든다고 간주하기도 한다.
나이가 들면 살이 찌기 마련인데, 한국인의 BMI 기준이 너무 가혹하고 현실성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비만이 아닌 다른 원인 때문에 혈압이나 혈당, 콜레스테롤 등이 올라갈 수 있는데 살까지 찌면 생활 습관병 위험이 더 커 지게 된다. 따라서 나이가 들 수록 체중관리에 더더욱 엄격해 져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체중을 관리해야 하나? 세상에 제 마음 먹은 대로 호락호락 되는 게 어디 있을까만은, 그중에서도 살빼기 만큼 뜻대로 안되는 것도 드물다. 작심하고 풍선 다이어트, 포도 다이어트, 황제 다이어트, 심지어 단식에 이르기까지 효과 좋다는 방법은 다 따라 해 보지만, 살이란 놈은 그때만 잠깐 사라졌다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나타나 사람을 허탈하게 만든다. 때로는 이전보다 살이 더 쪄 낭패를 맞게 된다. 도대체 주위를 둘러보면 살빼는 방법과 도구가 그 얼마나 많은가? TV나 신문, 잡지 등에선 살 빠지는 체조와 음식 등을 경쟁적으로 소개하고 있고, 살빼기 서적들은 날개 돋힌듯 팔려나가 항상 서점 베스트셀러 코너를 차지하고 있다. 체중 감량에 효과적이라는 각종 약품과 운동기구 광고도 홍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하면 살이 빠지나”를 묻고 있다.
세상에 이것만큼 간단하고 명료하고 분명한 것도 없다. 체중관리의 철칙(鐵則)은 섭취하는 칼로리가 소비하는 칼로리보다 많으면 살이 찐다는 것이다. 즉 많이 먹고 적게 움직이면 살이 찌고,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이거나, 많이 먹더라도 먹는 양보다 훨씬 많이 움직이면 살이 빠진다. 이것은 아주 단순한 플러스 마이너스의 셈법이며, 여기엔 예외가 있을 수 없다.
살 빠지는 주사에서부터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다이어트법에 이르기 까지 수 많은 ‘비법’이 현대인의 귀를 유혹하지만, 어느것이든 ‘먹는 만큼 찐다’는 원칙을 부정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엉터리 아니면 사기다. 물론 세상을 살다보면 버는 것 없이 쓰기만 해도 부자가 될 수 있고, 반대로 쓰지 않고 저축만 해도 가난해 질 수 있다. 로또에 당첨될 수도 있고, 예기치 못한 사고로 한꺼번에 재산을 날릴 수 있다. 그러나 인체내에선 그같은 예외가 통하지 않는다.
따라서 살을 빼려면 식사량을 줄이고 운동량을 늘려야 한다. 식사량만 줄이거나 운동량만 늘려서는 기대한 효과를 거둘 수 없다. 살빼기는 ‘소식(小食)’과 ‘운동’이란 이름의 두 발을 사용하는 달리기 시합과 같아서, 어느 하나만으로는 승리할 수 없다. 배불리 먹고 싶어도 적당한 수준에서 숟가락을 놓고, 찬바람 부는 새벽 단잠에서 일어나 운동복으로 갈아 입는 귀찮고 힘든 과정을 감내해야 살이 빠진다. 너무나도 당연한 얘기를 되풀이하는 이유는 현실에서 진실은 항상 무시되고, 효과가 없거나 오히려 역효과가 나는 편법이나 기괴한 사술이 대단한 비법처럼 사람의 마음을 빼앗아 가기 때문이다.
다이어트의 사전적 의미는 식이요법이다. 그런데도 다이어트란 단어가 살빼기와 동의어처럼 쓰이고 있는 이유는 음식만 조절하면 살이 빠진다고 믿는 사람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반인에게 알려진 대부분의 체중 감량법은 다이어트법이다. 그러나 다이어트만으로 살을 빼는 것은 ‘하수(下手)’며, 그 중에서도 특정 음식만 섭취해 살을 빼려는 것은 그야 말로 ‘악수(惡手)’라 할 수 있다.
대표적인 ‘악수’는 포도, 사과, 감자 등 한가지 음식만 먹는 ‘원푸드(one-food) 다이어트’다. 유명 연예인들이 포도나 사과 등으로 살을 뺐다는 소문이 나면서, 원푸드 다이어트는 20대 30대 여성들을 중심으로 한 때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기도 했다. 이 다이어트에 사용되는 포도 등은 체내서 쉽게 당질로 바뀌는 탄수화물 중심의 식품이다. 탄수화물만 섭취해 단백질이 부족해 지면, 단백질 덩어리인 근육이 분해돼 부족한 단백질을 보충하게 되고, 이 때문에 단기간에 살이 빠지게 된다는 게 이 다이어트의 원리다. 즉 지방이 아닌 근육이 줄어들면서 살이 빠지는 것이다.
근육은 그 자체가 우리 몸에 필요할 뿐 아니라, 살빼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에너지 소비량이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의 지방이 10의 열량을 소비한다면 1㎏의 근육은 40~50의 열량을 소비한다. 따라서 근육이 많으면 많을수록 많이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체질이 된다. 반대로 근육이 줄어들고 지방이 많아지면, 인체 전체의 에너지 소비량이 크게 줄어들어, 조금만 먹어도 살이 찌는 체질로 변한다. 따라서 지방 대신 근육을 줄이는 원푸드 다이어트는 오히려 살이 찌고 싶은 사람에게 적극 권장할 만하다.
비만 클리닉을 찾는 환자 중 상당수는 원푸드 다이어트 때문에 오히려 살 찌는 체질로 변한 환자들이다. 강재헌 교수의 비만 클리닉에 찾아온 김모(32세)씨가 대표적 경우다. 키가 158㎝인 김씨가 병원에 왔을 때 몸무게는 80㎏. 평소 60㎏ 정도이던 김씨는 1년쯤 전 여성지를 보고 3주간 사과다이어트를 해서 7㎏을 감량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사과만 먹고 살 수는 없는 법. 정상식사로 돌아오자 몸무게가 빠른 속도로 증가해, 1년쯤 지나자 다이어트 전 몸무게보다도 20㎏이나 더 살이 쪘다. 사과 다이어트 뒤에도 음식을 적게 먹으며 체중을 관리했다는 김씨는 영문을 몰라 고개를 갸웃거리며 클리닉으로 들어섰다. 3주간의 사과 다이어트로 자신의 몸이 살찌는 체질로 변했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같은 원리로 단식도 살을 찌우는, 아주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다. 물론 단식을 하면 당장은 살이 빠진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가만히 누워 있어도 인체라는 시스템을 가동시키려면 상당한 열량이 필요하다. 들어오는 것은 없고 나가기만 하니 살이 빠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 때 빠지는 체중의 대부분이 근육이라는 게 문제다. 단식으로 에너지 공급이 중단되면 인체는 이를 위기상황으로 인식하고 에너지 소비를 최대한 줄이게 되며, 비상식량에 해당되는 지방을 최대한 아껴 쓰게 된다. 대신 필수 에너지는 근육을 분해해서 충당한다. 이 때문에 단식이 끝나고 정상식사로 돌아오게 되면, 인체는 ‘초절전형’으로 변해 있는데다, 근육마저 줄어들어 조금만 먹어도 살이 찌는 체질로 변하는 것이다. 단식을 하면 머리가 맑아지고 숙변이 제거되는 효과는 있는지 모르지만 최소한 살빼기에는 오히려 악효과 뿐이다.
황제 다이어트도 썩 권할만한 다이어트는 아니다. 미국 심장전문의 로버트 아킨스 박사가 제안해 ‘아킨스 다이어트’로 불리는 이 다이어트는 탄수화물의 섭취를 엄격하게 제안하는 것. 탄수화물만 섭취하는 원푸드 다이어트와는 정 반대의 개념이다. 우리 몸을 움직이는 주 연료인 탄수화물 섭취를 제한하면 체지방이 분해돼 대체 에너지로 이용되므로 체중이 줄어든다는 원리다. 따라서 고기 등 단백질이나 지방질 식품은 비교적 ‘마음껏’ 먹어도 되므로 특히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국내에선 ‘고기 다이어트’ 또는 이건희 삼성 그룹 회장도 이 다이어트를 했다고 알려지면서 ‘황제 다이어트’로 불려지고 있다. 최근 미국에선 편식으로 인한 영양 불균형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 비타민 등 영양제를 복용하면서 다이어트를 하는 개량형 ‘뉴 아킨스 다이어트’도 등장했다.
황제 다이어트를 하면 짧은 기간에 3~4㎏, 때로는 그 이상도 너끈히 빠진다. 그러나 문제는 감량된 체중만큼 체지방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탄수화물의 공급이 중단돼 체지방이 분해되면 ‘케톤’이란 물질이 생성돼 대체연료로 사용되는데, 이때 케톤은 인체의 수분을 끌어당겨 배출시키는 작용, 즉 이뇨작용을 한다. 따라서 황제 다이어트를 해서 줄어드는 체중은 체지방이 감소된 결과라기 보다 탈수 때문이라고 해석해야 한다. 결국 정상 식사로 돌아와서 수분을 보충해 주면 다시 살이 찐다는 게 이 다이어트법의 한계다.
황제 다이어트의 효과에 대해선 사실 논란이 있다. 탈수 때문에 단기적으로 살이 빠질 뿐 장기적인 체중감량 효과는 없다는 데 대부분의 의학자들이 동의하지만, 최근엔 장기적으로도 살이 빠진다는 연구결과도 발표되고 있다. 초기엔 탈수 현상 때문에 살이 빠지지만 조금 지나면 체지방도 크게 줄어들며, 그 때문에 콜레스테롤 수치까지 낮아져 심장병 등을 예방한다는 연구 등이다. 따라서 좀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지만, 사람의 자연적인 식습관에 어긋나는 ‘유별난’ 다이어트를 구태여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결국 살을 빼려면 단백질, 탄수화물, 지방이 골고루 포함된 균형잡힌 식사를 하되 칼로리를 일정 수준 이하로 제한하는 수 밖에 없다. 치즈, 자장면, 갈비, 삼겹살 등 고열량 식품은 조금만 먹어도 기준 열량을 훌쩍 초과하므로 가급적 칼로리가 낮은 생선, 야채, 콩, 두부, 현미 등으로 식단을 바꾸면 크게 배고픈 느낌 없이도 목표한 칼로리를 지킬 수 있다. 이같은 ‘저(低)칼로리식’은 살빼기의 기본 중 기본이다.
최근엔 ‘저 당지수식(低 糖指數食)’의 중요성도 강조되고 있다. 당 지수(GI)란 음식 100g이 분해돼서 얼마만큼의 당이 생기느냐를 수치화한 것으로 음식을 먹을 때 가급적 당 지수가 낮은 음식을 먹으면 체중 감량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다소 복잡하지만 좀 자세히 설명해 보자. 식사를 해서 혈당이 올라가면 이를 정상으로 되돌리기 위해 췌장에서 인슐린이 분비된다. 분비된 인슐린은 당을 에너지로 분해해 근육 등에 보내고, 남은 에너지는 지방의 형태로 바꾸어 저장하게 된다. 이 때 만약 당지수가 높은 음식을 먹어 혈당이 급격히 높아지면 어떻게 될까? 다량의 인슐린이 분비돼 혈액 속 포도당을 분해시킨 뒤 우선적으로 근육이나 장기의 에너지로 공급하고, 그래도 남는 포도당은 재빨리 지방으로 전환해 지방세포에 축적시킴으로써 ‘고혈당 위기’를 극복하게 된다. 그러나 당 지수가 낮은 음식을 먹어 혈당이 거의 높아지지 않거나, 아주 서서히 높아진다면 인슐린도 적게 분비되며, 혈당이 분해돼 만들어진 에너지는 근육이나 장기 등에서 모두 소모하므로 지방으로 축적되지 않는다. 따라서 저 당지수식은 혈당이 급격하게 높아지지 않도록 가급적 당 지수가 낮은 음식을 골라 먹는 것이다.
참고로 탄수화물은 대부분 당지수가 높고, 육류나 야채류는 비교적 낮다. 따라서 탄수화물을 적게 먹고 육류 등을 많이 섭취한다는 점에서 결과적으로 황제 다이어트와 비슷하다. 그러나 탄수화물 섭취를 제로에 가깝게 억제하는 황제 다이어트와 달리 당 지수가 낮은 탄수화물을 골라 먹는다는 게 다른 점이다. 이 다이어트법을 하려면 당 지수가 60 이상인 음식을 삼가해야 하며, 따라서 흰 쌀밥이나 식빵 대신 현미밥 등 잡곡밥이나 통밀빵, 호밀빵, 메밀국수 등으로 메뉴를 변경해야 한다. 대부분의 육류와 어패류, 야채류, 과일류, 주류는 당 지수가 낮으므로 큰 문제가 없지만, 감자, 당근, 딸기잼, 옥수수, 호박, 토란, 파인애플 등은 당 지수가 60을 넘기 때문에 이 다이어트법에는 맞지 않다.
이 다이어트에 심취된 사람은 당 지수가 낮은 음식만 먹는다면 아무리 많은 칼로리를 섭취해도 살이 찌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어떤 이는 각종 다이어트에 실패한 사람, 식욕을 억제하기 힘든 사람, 매일 밤 회식을 해야 하는 사람, 운동을 할 수 없는 사람도 고생하지 않고, 손 쉽게 살을 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럴 듯하게 들리는 학설도 상식을 벗어나는 순간 ‘사이비’가 되기 쉽다. 결과적으로 저 당지수식은 체중감량에 효과가 있을 뿐 아니라 당뇨병을 예방하는 효과도 있어 강조할 만하다. 따라서 예를 들어 쌀밥을 현미밥으로 바꾸는 것처럼 평소 섭취하는 칼로리 수준에서 당 지수가 낮은 음식으로 식단을 짤 것을 권고하고 싶다. 그러나 저 당지수식의 체중감량 효과를 과대 해석해 매 끼니마다 당 지수가 낮은 육류와 치즈 등을 배불리 먹어도 살이 빠진다고 믿어서는 안된다. 그렇게 믿는 순간 과학은 사이비가 된다.
소식, 저 칼로리식, 저 당지수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운동이다. 운동을 꾸준히 하는 사람은 구태여 산해진미를 마다할 필요가 없다. 입맛 당기는 대로 먹고도 적정 체중을 유지할 수 있다. 먹은 것보다 더 많이 움직이면 살은 빠지게 돼 있다. 따라서 체중을 줄이려는 사람은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기에 앞서 어떤 운동을 어떻게 할지 먼저 고민해야 한다. 운동은 제쳐놓고 먹는 것만 줄여 살을 빼려는 사람이 많은데, “왜”냐고 물어보면 “시간도 없고, 힘 들어서…”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그 정도도 참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절대 살이 빠지지 않는다. 설혹 먹는 것을 줄여 어느 정도 살을 뺄 수 있을지 모르지만 더 이상은 어렵다. 한 발로 달리는 사람이 두 발로 달리는 사람을 절대 이길 수 없는 법이다.
운동은 유산소 운동과 근육운동을 함께 하는 게 좋다. 살을 빼겠다고 무작정 달리기만 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보단 아령이나 역기 들기 등 근육 운동을 곁들이는 게 훨씬 효과적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근육은 에너지를 매우 많이 소비하는 조직이기 때문이다. 즉 근육이 많으면 많을 수록 에너지 소비량도 많아져, 왠만큼 먹어도 살이 찌지 않게 되는 것이다. 살이 안찌는 체질로 변한다는 얘기다. 나이가 들면서 나잇살이 찌는 이유도 근육이 자꾸 줄어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이가 많을 수록 근육운동을 더 열심히 해야 한다.
한편 살빼기가 주 목적이라면 달리기 보단 걷기를 먼저 시도하는 게 좋다. 물론 단위시간 당 소모하는 칼로리는 달리기가 걷기보다 두 배 이상 많다. 당연히 달리기를 하면 걷는 것보다 두 배 이상 살이 많이 빠질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30분간 걷거나 뛴다면 뱃살 등이 빠지는 정도는 비슷하다. 더군다나 달리기는 오래 할 수 없지만, 걷는 것이라면 서너시간이라도 그리 힘들지 않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여러가지 변수를 종합할 때, 걷기가 달리기보다 더 효과적인 체중 감량법이란 설명이다.
체중은 섭취한 칼로리와 소모한 칼로리의 함수관계라 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에너지가 소비되는 패턴을 알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운동의 강도가 세면 셀수록 탄수화물이 에너지로 많이 이용되고, 약하면 지방이 에너지원으로 더 많이 이용된다. 또 운동 종류와 상관없이 운동 시작 직후엔 탄수화물이 많이 소비되며, 운동시간이 길어지면 길어 질수록 지방이 더 많이 소비된다. 운동의 종류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유산소 운동의 경우, 일반적으로 운동을 시작한 뒤 15분 정도가 지나면 탄수화물이 소비되고, 그 이후엔 주로 지방이 소비된다. 따라서 살을 빼려 운동을 한다면 한번에 15분 이상 지속적으로 운동해야 하며, 가급적 오래 할 수 있는 걷기가 제격이라는 것이다.
외국의 실험결과에 따르면 30분간 속보를 하면 50대50, 달리기를 하면 33대67의 비율로 지방과 탄수화물이 소비된다. 뱃살의 원인인 지방만 놓고 보면 빨리 걷기 30분은 71㎉, 조깅 30분은 82.5㎉의 지방이 소비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물론 운동의 목적이 전반적인 운동능력의 향상과 심장-폐-혈관-뼈 등의 단련에 있다면 걷기보다 달리기가 훨씬 좋다. 또 가끔씩은 호흡이 가쁠 정도로 운동 강도를 높혀 줄 필요도 있다. 그러나 순수하게 살빼기가 목적이라면 달리기보다 걷기가 더 좋다는 얘기다.
마지막으로 생활습관의 중요성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자. 필자는 미국생활 1년동안 정말 실컷 먹었다. 하루 걸러 하루씩 등심 스테이크, 닭고기 바베큐를 해 먹었고, 가끔씩은 레스토랑에 가서 양 많은 남부 요리를 뚝딱 해치웠다. 배 터질 정도로 폭식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한번도 음식을 절제해 본 기억이 없는 것 같다. 더군다나 그곳은 스트레스 제로 지대였다. 기사 아이디어 회의에 붙들려 들어가지도 않았고, 기사 마감 시간에 ?기지도 않았다. 느즈막 하게 일어나 아이 학교 데려다 주고 어슬렁 어슬렁 나갔다 피곤하면 집으로 돌아와 오수(午睡)의 달콤함을 마음껏 즐겼다. 그 때 버릇이 지금껏 남아 약간 괴롭긴 하지만.
그래서 살이 엄청나게 많이 쪘다는 얘기가 아니다. 믿기 어렵지만 그렇게 포식하고 빈둥빈둥 지냈는데도 오히려 한국에 있을 때보다 체중이 3~4㎏ 줄었다. 운동량은 한국에서와 비슷하거나, 조금 더 많았던 것 같지만 변수가 될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비밀은 식사시간에 있었다. 한국에서 필자는 보통 저녁 8시쯤 저녁 식사를 한다. 낮 12시쯤 식사하고 잔뜩 허기져 있는 상태서 저녁식사를 하다보니 자연히 많이 먹게 되고, 술도 한 잔 곁들이게 된다. 취재원과 함께 하는 식사는 한 두시간을 훌쩍 넘기기가 예사다. 경우에 따라 ‘2차’를 가면 술과 함께 또 안주를 먹게 된다. 그러다보면 배가 잔뜩 부른 상태로 집에 돌아와 채 소화도 안된 상태서 잠자리에 들게 된다. 그것이 고스란히 살이 된 것이다.
그러나 미국에서 저녁 식사 시간은 예외 없이 6시30분 쯤이었다. 가족끼리 먹으니 아무리 진수성찬이래도 식사시간이 20~30분을 넘지 않는다. 식사가 끝나면 집 주위를 산책하고 TV를 보거나 책을 읽는다. 12시쯤 잠자리에 들 때면 저녁 먹은 게 모두 소화가 돼 배 속이 텅 비게 된다. 많이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개인적인 경험담을 장황하게 늘어놓은 이유는 필자처럼 누구에게나 살이 찔 수 밖에 없는 버릇이나 생활습관이 아마도 하나쯤은 있을 것 같다는 믿음에서다. 오후 너댓시만 되면 배가 출출해서 빵 한 조각이라도 꼭 먹어야 하는 사람, 식사를 한 뒤 케이크나 아이스크림 등 디저트를 반드시 찾아 먹는 사람, 자기 직전 맥주 한 캔을 시원하게 들이켜야 잠들 수 있는 사람, 밤에 끓여먹는 라면이 제일 맛있다는 사람, 집에 들어오면 리모컨을 꿰차고 소파에 들어 누워 손가락만 움직이는 사람, 아무리 짧은 거리도 꼭 차를 타고 가는 사람….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살빼기의 원칙은 소식과 운동이다. 그러나 이처럼 살이 찔 수 밖에 없는 나쁜 버릇이나 생활습관이 있는 사람들은 소식이나 운동보다 생활습관의 교정이 더 시급한 것 같다.
강재헌 교수는 “비만을 치료하는데 무슨 명의가 필요하냐”며 곤혹스러워 했다. 비교적 ‘어린’ 나이에 ‘명의 코너’ 취재 대상이 된 게 거북한 것 같기도 했다. 사실 비만을 치료하는 데 있어 대단한 실력이나 노하우가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그의 설명대로 편법을 쓰지 않고 우직하게 원칙대로만 하면 된다. 그러나 그같은 ‘원칙대로’ 의사가 주변에 그렇게 많아 보이지는 않는다는 게 문제다. 단기적 체중감량에 집착해 살 빼는 주사나 약 처방을 남발하는 등, 그의 표현대로라면 ‘하수(下手)’를 쓰는 의사가 많다. 그렇게 뺀 살은 금방 다시 찌게 된다는 게 강 교수의 신념이다.
1965년생인 강 교수는 1989년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서울대병원서 가정의학과 레지던트 과정을 마쳤다. 1996년 인제의대 상계백병원으로 자리를 옮겨 비만 센터를 개설했으며, 2003년엔 서울백병원으로 옮겨 또 하나의 비만 센터를 만들었다. 그는 “비만은 여러 임상분야 지식을 고루 갖춘 의사가 체육학, 영양학 등 다른 분야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제대로 치료할 수 있다”며 “센터화(化)는 결과적으로 성공한 비만치료 모델이 됐다”고 말했다. 그의 성공에 고무돼 2000년을 전후해 다른 병원에서도 앞다퉈 비만센터를 개설해, 그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이 분야 ‘왕 고참’이 됐다.
강 교수는 2003~2004년 KBS 2 TV의 건강프로그램 ‘비타민’에서 ‘뱃살을 줄여라’ 코너에 고정 출연하고, 각종 대중 강연에 불려 다니는 등 다이어트 전도사로 동분서주하고 있다. 진료와 연구, 방송활동과 강연 등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 내느라 그에게 전화를 걸면 늘상 부재중 메시지다. “그렇게 무리하단 병 나겠다”고 말하자 “비만과 다이어트에 대한 잘못된 상식이 너무 많이 퍼져 있다”며 “아직 젊어 힘이 있을 때 부지런히 뛰어서 대중에게 올바른 다이어트 상식을 전달하고 싶다”고 말했다.
살 빼는 약, 어떤 게 있나
대한비만학회는 체질량지수(BMI)가 25 이상인 사람 중 식사-운동요법을 3~6개월 시행해도 효과가 없는 경우에 한해 약물 치료를 권장하고 있다. 2004년 현재 미국 FDA로 부터 효과와 안전성이 입증된 비만치료제는 제니칼(올리스타트)과 리덕틸(시부트라민) 둘 밖이다.
제니칼은 위장관에 작용해서 지방 성분의 체내 흡수를 약 30% 정도 줄여준다. 예를 들어 100의 지방을 섭취했다면 30은 장에서 흡수되지 않고 대변으로 바로 빠져 나오는 원리다. 따라서 육식을 많이 하거나 잦은 외식으로 지방 섭취량이 많은 사람에게 효과적이다. 별다른 부작용이 없어 고지혈증이나 당뇨병 환자도 사용할 수 있다. 지방이 바로 항문으로 빠져 나오므로 간혹 팬티에 변을 지릴 수 있다는 게 단점이지만 이 때문에 오히려 변비 해소에는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이에 비해 중추신경에 작용하는 리덕틸은 포만감을 불러 일으켜 식욕을 억제하고, 체내 에너지 대사를 증가시킴으로써 살을 빠지게 한다. 우리나라 사람처럼 지방보다 탄수화물 중심의 식사를 하는 경우엔 제니칼보다 리덕틸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그러나 제니칼이 복용 즉시 효과가 나타나는데 비해 리덕틸은 몇 일 복용해야 효과가 나타난다는 게 단점이다.
그 밖에도 식욕을 억제하는 에페드린, 펜터민, 펜플루라민, 덱스펜플루라민, 플루옥세틴 등의 약물과 천식 치료제로 개발된 아미노필린, 간질약으로 개발된 토피라메이트, 이뇨제인 듀레틱스 등의 약물이 주로 개원가에서 비만 치료에 사용되고 있다. 제니칼이나 리덕틸과 달리 이 약들은 경우에 따라 심각한 부작용이 생길 수 있으므로 아주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한다. 대한비만학회는 이 약들을 이용한 비만 치료를 금지하고 있으나, 많은 개원 의사들은 “적절하게 사용하면 부작용 없이 살을 뺄 수 있다”고 맞서고 있는 상황이다.
2000년 7월부터 1년간 필자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UNC)에서 메디컬 저널리즘을 공부했다. 세상을 온통 뒤덮은 키 큰 나무들과 그 속에 푹 파묻힌 건물과 도로와 사람들. 녹색 물감 하나면 그려낼 수 있는, 그렇게 푸르고 깨끗하며 살기좋은 작은 도시가 바로 UNC가 있는 채플힐이다. 그곳에서의 안식과 평안과 추억은 지금도 가슴이 알싸하게 그립다.
그러나 잊혀지지 않는 채플힐의 영상 중 하나는 마치 하마처럼 거대하고 기형적인 몸집 때문에 제대로 걷지도 숨쉬지도 못하는 뚱보들의 모습이다. 필자가 통학하던 노선 버스의 한 흑인 운전자가 생각난다. 그 큰 엉덩이를 도무지 얹을 수 없어, 특별히 개조한 운전석에 앉아 운전했던 그녀의 체중은 족히 200㎏은 넘는 것 같았다.
“굿 모닝”이라고 말할 때의 짜증스런 얼굴과 가쁜 숨소리가 지금도 느껴지는 것 같다. ‘월 마트’ ‘푸드 라이온’ 같은 할인매장이나 식료품점에서도 그렇게 씩씩거리며 뒤뚱뒤뚱 걷는 사람들이 많았다. ‘21세기 인류 최대의 적은 비만’이라는 보건학자들의 경고를 그곳에서 체감할 수 있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비만을 세상에서 가장 빨리 확산되는 전염병이라고 규정한다. 비만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나 세균이 있는 것도 아닌데 전염병이라 부르는 이유는 “좀 더 쉬자, 좀 더 눕자, 좀 더 편해지자”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을 매개로 비만이 전염되기 때문이다.
비만은 과거 특권과 풍요의 상징이었다. 과거 민초(民草)들은 제대로 못먹고 죽도록 일만해서 살이 찔 수가 없었다. 그러나 산업과 과학의 발달은 보통 사람에게까지 그같은 풍요를 가능케 했고, 그 결과가 비만이란 재앙으로 나타나고 있다.
국제비만특별조사위원회(IOTF)는 과(過)체중 또는 비만인 사람이 17억명을 웃돈다고 2003년 초 발표했다. 이는 세계 인구의 약 30%에 해당한다. 심지어 최빈국(最貧國)인 아프리카 국가에서도 비만인구가 증가하고 있다는 게 IOFT의 경고다. 자동차, 엘리베이터, 전화기, 리모콘, 컴퓨터와 같은 ‘비만 바이러스’를 매개로 세기의 역병(疫病)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비만의 재앙은 더 이상 수수방관해도 좋은, 먼 나라의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도 전체 성인의 약 30% 정도가 비만이며, 비만인 비율은 매년 3% 정도씩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문옥륜교수가 서울시민 3800명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체질량지수(BMI)가 25가 넘는 비만인이 32.7%에 달했다. BMI란 ‘체중(㎏)을 키(m)의 제곱으로 나눈 값’이다. 또 말로만 듣던 ‘베리아트릭 수술’도 2003년 초 국내에 도입된 이래 최근 크게 확산되고 있다. 베리아트릭이란 살을 빼는 최후의 수단으로 음식을 적게 먹기 위해 위의 90% 정도를 잘라버리는 수술이다.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엔 체중이 수백㎏씩 나가는 ‘수퍼 뚱보’를 거의 볼 수 없다. 그래서 “비만 재앙이 온다”는 경고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이 많을지 모른다. 그러나 서양과 동양은 비만의 기준부터 다르다. 서양인은 BMI가 25 이상이면 과체중, 30 이상이면 비만이지만, 한국인은 23 이상이면 과체중, 25 이상이면 비만으로 분류한다. 대한비만학회가 이렇게 규정한 이유는 동양인은 체지방 비율이 높아, 같은 비만도의 서양인보다 심장병 등 비만으로 인한 합병증 발생 비율이 훨씬 높기 때문이다.
비만을 재앙이라 부르는 이유는 만병의 근원이 되기 때문이다. 당뇨병, 고혈압, 고지혈증, 동맥경화, 심장병, 뇌졸중 등의 발병에 비만이 직접적으로 관련돼 있다는 것은 이제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심지어 소화기질환, 호흡기질환, 관절염 등 뼈질환, 발기부전 등도 비만과 직접 간접적으로 관계가 있다. 최근엔 대장암, 담낭암, 식도암, 유방암, 신장암, 자궁내막암 등 각종 암의 발병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가 쏟아지고 있다.
따라서 살을 빼야 한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까지 살을 빼야 할까? 한국인의 정상체중은 BMI 18.5~22.9다. 23~24.9는 과체중, 25~29.9는 비만, 30 이상은 고도 비만이다. 자신의 비만 여부를 알기위해서는 BMI값을 측정하는 공식 ‘BMI 값=체중÷(키×키)’에 따르면 된다. 예컨대 키 175㎝에 몸무게 80㎏이라면, BMI값은 공식에 수치를 대입해서 80÷(1.75×1.75)를 해서 26.1이 된다. BMI값 26.1이면 비만이다.
다음으로 이 사람의 정상 체중을 알아보자. 그는 BMI값 23까지 살을 빼야하므로, BMI 23에 해당하는 체중을 알아보려면 ‘(키×키)×23’을 하면 된다. 키가 175㎝인 사람은 ‘(1.75×1.75)×23’을 해서 나온 값 70.4㎏이 BMI 23에 해당한다. 따라서 몸무게가 80㎏인 사람은 9.6㎏의 살을 빼야한다. 단지 남자의 경우 BMI가 23~24.9 범위라도 허리둘레가 90㎝를 넘지 않으면 정상체중 범위에 든다고 간주하기도 한다.
나이가 들면 살이 찌기 마련인데, 한국인의 BMI 기준이 너무 가혹하고 현실성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비만이 아닌 다른 원인 때문에 혈압이나 혈당, 콜레스테롤 등이 올라갈 수 있는데 살까지 찌면 생활 습관병 위험이 더 커 지게 된다. 따라서 나이가 들 수록 체중관리에 더더욱 엄격해 져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체중을 관리해야 하나? 세상에 제 마음 먹은 대로 호락호락 되는 게 어디 있을까만은, 그중에서도 살빼기 만큼 뜻대로 안되는 것도 드물다. 작심하고 풍선 다이어트, 포도 다이어트, 황제 다이어트, 심지어 단식에 이르기까지 효과 좋다는 방법은 다 따라 해 보지만, 살이란 놈은 그때만 잠깐 사라졌다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나타나 사람을 허탈하게 만든다. 때로는 이전보다 살이 더 쪄 낭패를 맞게 된다. 도대체 주위를 둘러보면 살빼는 방법과 도구가 그 얼마나 많은가? TV나 신문, 잡지 등에선 살 빠지는 체조와 음식 등을 경쟁적으로 소개하고 있고, 살빼기 서적들은 날개 돋힌듯 팔려나가 항상 서점 베스트셀러 코너를 차지하고 있다. 체중 감량에 효과적이라는 각종 약품과 운동기구 광고도 홍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하면 살이 빠지나”를 묻고 있다.
세상에 이것만큼 간단하고 명료하고 분명한 것도 없다. 체중관리의 철칙(鐵則)은 섭취하는 칼로리가 소비하는 칼로리보다 많으면 살이 찐다는 것이다. 즉 많이 먹고 적게 움직이면 살이 찌고,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이거나, 많이 먹더라도 먹는 양보다 훨씬 많이 움직이면 살이 빠진다. 이것은 아주 단순한 플러스 마이너스의 셈법이며, 여기엔 예외가 있을 수 없다.
살 빠지는 주사에서부터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다이어트법에 이르기 까지 수 많은 ‘비법’이 현대인의 귀를 유혹하지만, 어느것이든 ‘먹는 만큼 찐다’는 원칙을 부정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엉터리 아니면 사기다. 물론 세상을 살다보면 버는 것 없이 쓰기만 해도 부자가 될 수 있고, 반대로 쓰지 않고 저축만 해도 가난해 질 수 있다. 로또에 당첨될 수도 있고, 예기치 못한 사고로 한꺼번에 재산을 날릴 수 있다. 그러나 인체내에선 그같은 예외가 통하지 않는다.
따라서 살을 빼려면 식사량을 줄이고 운동량을 늘려야 한다. 식사량만 줄이거나 운동량만 늘려서는 기대한 효과를 거둘 수 없다. 살빼기는 ‘소식(小食)’과 ‘운동’이란 이름의 두 발을 사용하는 달리기 시합과 같아서, 어느 하나만으로는 승리할 수 없다. 배불리 먹고 싶어도 적당한 수준에서 숟가락을 놓고, 찬바람 부는 새벽 단잠에서 일어나 운동복으로 갈아 입는 귀찮고 힘든 과정을 감내해야 살이 빠진다. 너무나도 당연한 얘기를 되풀이하는 이유는 현실에서 진실은 항상 무시되고, 효과가 없거나 오히려 역효과가 나는 편법이나 기괴한 사술이 대단한 비법처럼 사람의 마음을 빼앗아 가기 때문이다.
다이어트의 사전적 의미는 식이요법이다. 그런데도 다이어트란 단어가 살빼기와 동의어처럼 쓰이고 있는 이유는 음식만 조절하면 살이 빠진다고 믿는 사람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반인에게 알려진 대부분의 체중 감량법은 다이어트법이다. 그러나 다이어트만으로 살을 빼는 것은 ‘하수(下手)’며, 그 중에서도 특정 음식만 섭취해 살을 빼려는 것은 그야 말로 ‘악수(惡手)’라 할 수 있다.
대표적인 ‘악수’는 포도, 사과, 감자 등 한가지 음식만 먹는 ‘원푸드(one-food) 다이어트’다. 유명 연예인들이 포도나 사과 등으로 살을 뺐다는 소문이 나면서, 원푸드 다이어트는 20대 30대 여성들을 중심으로 한 때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기도 했다. 이 다이어트에 사용되는 포도 등은 체내서 쉽게 당질로 바뀌는 탄수화물 중심의 식품이다. 탄수화물만 섭취해 단백질이 부족해 지면, 단백질 덩어리인 근육이 분해돼 부족한 단백질을 보충하게 되고, 이 때문에 단기간에 살이 빠지게 된다는 게 이 다이어트의 원리다. 즉 지방이 아닌 근육이 줄어들면서 살이 빠지는 것이다.
근육은 그 자체가 우리 몸에 필요할 뿐 아니라, 살빼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에너지 소비량이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의 지방이 10의 열량을 소비한다면 1㎏의 근육은 40~50의 열량을 소비한다. 따라서 근육이 많으면 많을수록 많이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체질이 된다. 반대로 근육이 줄어들고 지방이 많아지면, 인체 전체의 에너지 소비량이 크게 줄어들어, 조금만 먹어도 살이 찌는 체질로 변한다. 따라서 지방 대신 근육을 줄이는 원푸드 다이어트는 오히려 살이 찌고 싶은 사람에게 적극 권장할 만하다.
비만 클리닉을 찾는 환자 중 상당수는 원푸드 다이어트 때문에 오히려 살 찌는 체질로 변한 환자들이다. 강재헌 교수의 비만 클리닉에 찾아온 김모(32세)씨가 대표적 경우다. 키가 158㎝인 김씨가 병원에 왔을 때 몸무게는 80㎏. 평소 60㎏ 정도이던 김씨는 1년쯤 전 여성지를 보고 3주간 사과다이어트를 해서 7㎏을 감량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사과만 먹고 살 수는 없는 법. 정상식사로 돌아오자 몸무게가 빠른 속도로 증가해, 1년쯤 지나자 다이어트 전 몸무게보다도 20㎏이나 더 살이 쪘다. 사과 다이어트 뒤에도 음식을 적게 먹으며 체중을 관리했다는 김씨는 영문을 몰라 고개를 갸웃거리며 클리닉으로 들어섰다. 3주간의 사과 다이어트로 자신의 몸이 살찌는 체질로 변했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같은 원리로 단식도 살을 찌우는, 아주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다. 물론 단식을 하면 당장은 살이 빠진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가만히 누워 있어도 인체라는 시스템을 가동시키려면 상당한 열량이 필요하다. 들어오는 것은 없고 나가기만 하니 살이 빠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 때 빠지는 체중의 대부분이 근육이라는 게 문제다. 단식으로 에너지 공급이 중단되면 인체는 이를 위기상황으로 인식하고 에너지 소비를 최대한 줄이게 되며, 비상식량에 해당되는 지방을 최대한 아껴 쓰게 된다. 대신 필수 에너지는 근육을 분해해서 충당한다. 이 때문에 단식이 끝나고 정상식사로 돌아오게 되면, 인체는 ‘초절전형’으로 변해 있는데다, 근육마저 줄어들어 조금만 먹어도 살이 찌는 체질로 변하는 것이다. 단식을 하면 머리가 맑아지고 숙변이 제거되는 효과는 있는지 모르지만 최소한 살빼기에는 오히려 악효과 뿐이다.
황제 다이어트도 썩 권할만한 다이어트는 아니다. 미국 심장전문의 로버트 아킨스 박사가 제안해 ‘아킨스 다이어트’로 불리는 이 다이어트는 탄수화물의 섭취를 엄격하게 제안하는 것. 탄수화물만 섭취하는 원푸드 다이어트와는 정 반대의 개념이다. 우리 몸을 움직이는 주 연료인 탄수화물 섭취를 제한하면 체지방이 분해돼 대체 에너지로 이용되므로 체중이 줄어든다는 원리다. 따라서 고기 등 단백질이나 지방질 식품은 비교적 ‘마음껏’ 먹어도 되므로 특히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국내에선 ‘고기 다이어트’ 또는 이건희 삼성 그룹 회장도 이 다이어트를 했다고 알려지면서 ‘황제 다이어트’로 불려지고 있다. 최근 미국에선 편식으로 인한 영양 불균형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 비타민 등 영양제를 복용하면서 다이어트를 하는 개량형 ‘뉴 아킨스 다이어트’도 등장했다.
황제 다이어트를 하면 짧은 기간에 3~4㎏, 때로는 그 이상도 너끈히 빠진다. 그러나 문제는 감량된 체중만큼 체지방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탄수화물의 공급이 중단돼 체지방이 분해되면 ‘케톤’이란 물질이 생성돼 대체연료로 사용되는데, 이때 케톤은 인체의 수분을 끌어당겨 배출시키는 작용, 즉 이뇨작용을 한다. 따라서 황제 다이어트를 해서 줄어드는 체중은 체지방이 감소된 결과라기 보다 탈수 때문이라고 해석해야 한다. 결국 정상 식사로 돌아와서 수분을 보충해 주면 다시 살이 찐다는 게 이 다이어트법의 한계다.
황제 다이어트의 효과에 대해선 사실 논란이 있다. 탈수 때문에 단기적으로 살이 빠질 뿐 장기적인 체중감량 효과는 없다는 데 대부분의 의학자들이 동의하지만, 최근엔 장기적으로도 살이 빠진다는 연구결과도 발표되고 있다. 초기엔 탈수 현상 때문에 살이 빠지지만 조금 지나면 체지방도 크게 줄어들며, 그 때문에 콜레스테롤 수치까지 낮아져 심장병 등을 예방한다는 연구 등이다. 따라서 좀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지만, 사람의 자연적인 식습관에 어긋나는 ‘유별난’ 다이어트를 구태여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결국 살을 빼려면 단백질, 탄수화물, 지방이 골고루 포함된 균형잡힌 식사를 하되 칼로리를 일정 수준 이하로 제한하는 수 밖에 없다. 치즈, 자장면, 갈비, 삼겹살 등 고열량 식품은 조금만 먹어도 기준 열량을 훌쩍 초과하므로 가급적 칼로리가 낮은 생선, 야채, 콩, 두부, 현미 등으로 식단을 바꾸면 크게 배고픈 느낌 없이도 목표한 칼로리를 지킬 수 있다. 이같은 ‘저(低)칼로리식’은 살빼기의 기본 중 기본이다.
최근엔 ‘저 당지수식(低 糖指數食)’의 중요성도 강조되고 있다. 당 지수(GI)란 음식 100g이 분해돼서 얼마만큼의 당이 생기느냐를 수치화한 것으로 음식을 먹을 때 가급적 당 지수가 낮은 음식을 먹으면 체중 감량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다소 복잡하지만 좀 자세히 설명해 보자. 식사를 해서 혈당이 올라가면 이를 정상으로 되돌리기 위해 췌장에서 인슐린이 분비된다. 분비된 인슐린은 당을 에너지로 분해해 근육 등에 보내고, 남은 에너지는 지방의 형태로 바꾸어 저장하게 된다. 이 때 만약 당지수가 높은 음식을 먹어 혈당이 급격히 높아지면 어떻게 될까? 다량의 인슐린이 분비돼 혈액 속 포도당을 분해시킨 뒤 우선적으로 근육이나 장기의 에너지로 공급하고, 그래도 남는 포도당은 재빨리 지방으로 전환해 지방세포에 축적시킴으로써 ‘고혈당 위기’를 극복하게 된다. 그러나 당 지수가 낮은 음식을 먹어 혈당이 거의 높아지지 않거나, 아주 서서히 높아진다면 인슐린도 적게 분비되며, 혈당이 분해돼 만들어진 에너지는 근육이나 장기 등에서 모두 소모하므로 지방으로 축적되지 않는다. 따라서 저 당지수식은 혈당이 급격하게 높아지지 않도록 가급적 당 지수가 낮은 음식을 골라 먹는 것이다.
참고로 탄수화물은 대부분 당지수가 높고, 육류나 야채류는 비교적 낮다. 따라서 탄수화물을 적게 먹고 육류 등을 많이 섭취한다는 점에서 결과적으로 황제 다이어트와 비슷하다. 그러나 탄수화물 섭취를 제로에 가깝게 억제하는 황제 다이어트와 달리 당 지수가 낮은 탄수화물을 골라 먹는다는 게 다른 점이다. 이 다이어트법을 하려면 당 지수가 60 이상인 음식을 삼가해야 하며, 따라서 흰 쌀밥이나 식빵 대신 현미밥 등 잡곡밥이나 통밀빵, 호밀빵, 메밀국수 등으로 메뉴를 변경해야 한다. 대부분의 육류와 어패류, 야채류, 과일류, 주류는 당 지수가 낮으므로 큰 문제가 없지만, 감자, 당근, 딸기잼, 옥수수, 호박, 토란, 파인애플 등은 당 지수가 60을 넘기 때문에 이 다이어트법에는 맞지 않다.
이 다이어트에 심취된 사람은 당 지수가 낮은 음식만 먹는다면 아무리 많은 칼로리를 섭취해도 살이 찌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어떤 이는 각종 다이어트에 실패한 사람, 식욕을 억제하기 힘든 사람, 매일 밤 회식을 해야 하는 사람, 운동을 할 수 없는 사람도 고생하지 않고, 손 쉽게 살을 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럴 듯하게 들리는 학설도 상식을 벗어나는 순간 ‘사이비’가 되기 쉽다. 결과적으로 저 당지수식은 체중감량에 효과가 있을 뿐 아니라 당뇨병을 예방하는 효과도 있어 강조할 만하다. 따라서 예를 들어 쌀밥을 현미밥으로 바꾸는 것처럼 평소 섭취하는 칼로리 수준에서 당 지수가 낮은 음식으로 식단을 짤 것을 권고하고 싶다. 그러나 저 당지수식의 체중감량 효과를 과대 해석해 매 끼니마다 당 지수가 낮은 육류와 치즈 등을 배불리 먹어도 살이 빠진다고 믿어서는 안된다. 그렇게 믿는 순간 과학은 사이비가 된다.
소식, 저 칼로리식, 저 당지수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운동이다. 운동을 꾸준히 하는 사람은 구태여 산해진미를 마다할 필요가 없다. 입맛 당기는 대로 먹고도 적정 체중을 유지할 수 있다. 먹은 것보다 더 많이 움직이면 살은 빠지게 돼 있다. 따라서 체중을 줄이려는 사람은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기에 앞서 어떤 운동을 어떻게 할지 먼저 고민해야 한다. 운동은 제쳐놓고 먹는 것만 줄여 살을 빼려는 사람이 많은데, “왜”냐고 물어보면 “시간도 없고, 힘 들어서…”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그 정도도 참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절대 살이 빠지지 않는다. 설혹 먹는 것을 줄여 어느 정도 살을 뺄 수 있을지 모르지만 더 이상은 어렵다. 한 발로 달리는 사람이 두 발로 달리는 사람을 절대 이길 수 없는 법이다.
운동은 유산소 운동과 근육운동을 함께 하는 게 좋다. 살을 빼겠다고 무작정 달리기만 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보단 아령이나 역기 들기 등 근육 운동을 곁들이는 게 훨씬 효과적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근육은 에너지를 매우 많이 소비하는 조직이기 때문이다. 즉 근육이 많으면 많을 수록 에너지 소비량도 많아져, 왠만큼 먹어도 살이 찌지 않게 되는 것이다. 살이 안찌는 체질로 변한다는 얘기다. 나이가 들면서 나잇살이 찌는 이유도 근육이 자꾸 줄어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이가 많을 수록 근육운동을 더 열심히 해야 한다.
한편 살빼기가 주 목적이라면 달리기 보단 걷기를 먼저 시도하는 게 좋다. 물론 단위시간 당 소모하는 칼로리는 달리기가 걷기보다 두 배 이상 많다. 당연히 달리기를 하면 걷는 것보다 두 배 이상 살이 많이 빠질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30분간 걷거나 뛴다면 뱃살 등이 빠지는 정도는 비슷하다. 더군다나 달리기는 오래 할 수 없지만, 걷는 것이라면 서너시간이라도 그리 힘들지 않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여러가지 변수를 종합할 때, 걷기가 달리기보다 더 효과적인 체중 감량법이란 설명이다.
체중은 섭취한 칼로리와 소모한 칼로리의 함수관계라 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에너지가 소비되는 패턴을 알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운동의 강도가 세면 셀수록 탄수화물이 에너지로 많이 이용되고, 약하면 지방이 에너지원으로 더 많이 이용된다. 또 운동 종류와 상관없이 운동 시작 직후엔 탄수화물이 많이 소비되며, 운동시간이 길어지면 길어 질수록 지방이 더 많이 소비된다. 운동의 종류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유산소 운동의 경우, 일반적으로 운동을 시작한 뒤 15분 정도가 지나면 탄수화물이 소비되고, 그 이후엔 주로 지방이 소비된다. 따라서 살을 빼려 운동을 한다면 한번에 15분 이상 지속적으로 운동해야 하며, 가급적 오래 할 수 있는 걷기가 제격이라는 것이다.
외국의 실험결과에 따르면 30분간 속보를 하면 50대50, 달리기를 하면 33대67의 비율로 지방과 탄수화물이 소비된다. 뱃살의 원인인 지방만 놓고 보면 빨리 걷기 30분은 71㎉, 조깅 30분은 82.5㎉의 지방이 소비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물론 운동의 목적이 전반적인 운동능력의 향상과 심장-폐-혈관-뼈 등의 단련에 있다면 걷기보다 달리기가 훨씬 좋다. 또 가끔씩은 호흡이 가쁠 정도로 운동 강도를 높혀 줄 필요도 있다. 그러나 순수하게 살빼기가 목적이라면 달리기보다 걷기가 더 좋다는 얘기다.
마지막으로 생활습관의 중요성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자. 필자는 미국생활 1년동안 정말 실컷 먹었다. 하루 걸러 하루씩 등심 스테이크, 닭고기 바베큐를 해 먹었고, 가끔씩은 레스토랑에 가서 양 많은 남부 요리를 뚝딱 해치웠다. 배 터질 정도로 폭식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한번도 음식을 절제해 본 기억이 없는 것 같다. 더군다나 그곳은 스트레스 제로 지대였다. 기사 아이디어 회의에 붙들려 들어가지도 않았고, 기사 마감 시간에 ?기지도 않았다. 느즈막 하게 일어나 아이 학교 데려다 주고 어슬렁 어슬렁 나갔다 피곤하면 집으로 돌아와 오수(午睡)의 달콤함을 마음껏 즐겼다. 그 때 버릇이 지금껏 남아 약간 괴롭긴 하지만.
그래서 살이 엄청나게 많이 쪘다는 얘기가 아니다. 믿기 어렵지만 그렇게 포식하고 빈둥빈둥 지냈는데도 오히려 한국에 있을 때보다 체중이 3~4㎏ 줄었다. 운동량은 한국에서와 비슷하거나, 조금 더 많았던 것 같지만 변수가 될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비밀은 식사시간에 있었다. 한국에서 필자는 보통 저녁 8시쯤 저녁 식사를 한다. 낮 12시쯤 식사하고 잔뜩 허기져 있는 상태서 저녁식사를 하다보니 자연히 많이 먹게 되고, 술도 한 잔 곁들이게 된다. 취재원과 함께 하는 식사는 한 두시간을 훌쩍 넘기기가 예사다. 경우에 따라 ‘2차’를 가면 술과 함께 또 안주를 먹게 된다. 그러다보면 배가 잔뜩 부른 상태로 집에 돌아와 채 소화도 안된 상태서 잠자리에 들게 된다. 그것이 고스란히 살이 된 것이다.
그러나 미국에서 저녁 식사 시간은 예외 없이 6시30분 쯤이었다. 가족끼리 먹으니 아무리 진수성찬이래도 식사시간이 20~30분을 넘지 않는다. 식사가 끝나면 집 주위를 산책하고 TV를 보거나 책을 읽는다. 12시쯤 잠자리에 들 때면 저녁 먹은 게 모두 소화가 돼 배 속이 텅 비게 된다. 많이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개인적인 경험담을 장황하게 늘어놓은 이유는 필자처럼 누구에게나 살이 찔 수 밖에 없는 버릇이나 생활습관이 아마도 하나쯤은 있을 것 같다는 믿음에서다. 오후 너댓시만 되면 배가 출출해서 빵 한 조각이라도 꼭 먹어야 하는 사람, 식사를 한 뒤 케이크나 아이스크림 등 디저트를 반드시 찾아 먹는 사람, 자기 직전 맥주 한 캔을 시원하게 들이켜야 잠들 수 있는 사람, 밤에 끓여먹는 라면이 제일 맛있다는 사람, 집에 들어오면 리모컨을 꿰차고 소파에 들어 누워 손가락만 움직이는 사람, 아무리 짧은 거리도 꼭 차를 타고 가는 사람….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살빼기의 원칙은 소식과 운동이다. 그러나 이처럼 살이 찔 수 밖에 없는 나쁜 버릇이나 생활습관이 있는 사람들은 소식이나 운동보다 생활습관의 교정이 더 시급한 것 같다.
강재헌 교수는 “비만을 치료하는데 무슨 명의가 필요하냐”며 곤혹스러워 했다. 비교적 ‘어린’ 나이에 ‘명의 코너’ 취재 대상이 된 게 거북한 것 같기도 했다. 사실 비만을 치료하는 데 있어 대단한 실력이나 노하우가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그의 설명대로 편법을 쓰지 않고 우직하게 원칙대로만 하면 된다. 그러나 그같은 ‘원칙대로’ 의사가 주변에 그렇게 많아 보이지는 않는다는 게 문제다. 단기적 체중감량에 집착해 살 빼는 주사나 약 처방을 남발하는 등, 그의 표현대로라면 ‘하수(下手)’를 쓰는 의사가 많다. 그렇게 뺀 살은 금방 다시 찌게 된다는 게 강 교수의 신념이다.
1965년생인 강 교수는 1989년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서울대병원서 가정의학과 레지던트 과정을 마쳤다. 1996년 인제의대 상계백병원으로 자리를 옮겨 비만 센터를 개설했으며, 2003년엔 서울백병원으로 옮겨 또 하나의 비만 센터를 만들었다. 그는 “비만은 여러 임상분야 지식을 고루 갖춘 의사가 체육학, 영양학 등 다른 분야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제대로 치료할 수 있다”며 “센터화(化)는 결과적으로 성공한 비만치료 모델이 됐다”고 말했다. 그의 성공에 고무돼 2000년을 전후해 다른 병원에서도 앞다퉈 비만센터를 개설해, 그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이 분야 ‘왕 고참’이 됐다.
강 교수는 2003~2004년 KBS 2 TV의 건강프로그램 ‘비타민’에서 ‘뱃살을 줄여라’ 코너에 고정 출연하고, 각종 대중 강연에 불려 다니는 등 다이어트 전도사로 동분서주하고 있다. 진료와 연구, 방송활동과 강연 등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 내느라 그에게 전화를 걸면 늘상 부재중 메시지다. “그렇게 무리하단 병 나겠다”고 말하자 “비만과 다이어트에 대한 잘못된 상식이 너무 많이 퍼져 있다”며 “아직 젊어 힘이 있을 때 부지런히 뛰어서 대중에게 올바른 다이어트 상식을 전달하고 싶다”고 말했다.
살 빼는 약, 어떤 게 있나
대한비만학회는 체질량지수(BMI)가 25 이상인 사람 중 식사-운동요법을 3~6개월 시행해도 효과가 없는 경우에 한해 약물 치료를 권장하고 있다. 2004년 현재 미국 FDA로 부터 효과와 안전성이 입증된 비만치료제는 제니칼(올리스타트)과 리덕틸(시부트라민) 둘 밖이다.
제니칼은 위장관에 작용해서 지방 성분의 체내 흡수를 약 30% 정도 줄여준다. 예를 들어 100의 지방을 섭취했다면 30은 장에서 흡수되지 않고 대변으로 바로 빠져 나오는 원리다. 따라서 육식을 많이 하거나 잦은 외식으로 지방 섭취량이 많은 사람에게 효과적이다. 별다른 부작용이 없어 고지혈증이나 당뇨병 환자도 사용할 수 있다. 지방이 바로 항문으로 빠져 나오므로 간혹 팬티에 변을 지릴 수 있다는 게 단점이지만 이 때문에 오히려 변비 해소에는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이에 비해 중추신경에 작용하는 리덕틸은 포만감을 불러 일으켜 식욕을 억제하고, 체내 에너지 대사를 증가시킴으로써 살을 빠지게 한다. 우리나라 사람처럼 지방보다 탄수화물 중심의 식사를 하는 경우엔 제니칼보다 리덕틸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그러나 제니칼이 복용 즉시 효과가 나타나는데 비해 리덕틸은 몇 일 복용해야 효과가 나타난다는 게 단점이다.
그 밖에도 식욕을 억제하는 에페드린, 펜터민, 펜플루라민, 덱스펜플루라민, 플루옥세틴 등의 약물과 천식 치료제로 개발된 아미노필린, 간질약으로 개발된 토피라메이트, 이뇨제인 듀레틱스 등의 약물이 주로 개원가에서 비만 치료에 사용되고 있다. 제니칼이나 리덕틸과 달리 이 약들은 경우에 따라 심각한 부작용이 생길 수 있으므로 아주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한다. 대한비만학회는 이 약들을 이용한 비만 치료를 금지하고 있으나, 많은 개원 의사들은 “적절하게 사용하면 부작용 없이 살을 뺄 수 있다”고 맞서고 있는 상황이다.
가져온 곳: [당신은 꿈이 있어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글쓴이: 돌다리 바로 가기
출처 : 블로그 > Sanchos | 글쓴이 : sanchos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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