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쩍..떠나고 싶을 때...

[스크랩] 인도여행 여섯째날(갠지스강)

한 울 타 리 2006. 4. 28. 18:54
2006. 2. 13.
 
이제 바라나시에서 아침을 맞습니다.
이른 새벽 갠지스강 관광을 나선겁니다.
.
알싸한 새벽공기를 가르며 삶과 죽음이 교차되는.... 곳 갠지스강.
그곳 모습들을 담아보았습니다.
(갠지스강은 인도인들에게 어머니와도 같은 곳으로 이곳을 찾는 이들은
이렇게 꽃으로 만든 촛불을 강물에 띠우더군요.그러니 강 입구엔 온통 꽃파는 곳 천지였습니다.)
 
 

 
 
 

 

 
 

 

 
 
[이지상의 세계문화기행]<52>힌두교 성지 인도 바라나시 
삶과 죽음, 열정과 체념, 초월과 현실이 교차  
바라나시는 인도의 힌두교도들에게는 성지 중의 성지다. 
시의 북쪽과 남쪽에서 흐르는 바루나(Varuna)강과 아시(Assi)강에서 
그 이름이 유래하였지만,  바라나시를 감싸안는 강은 히말라야의 눈 녹은 
물을 품고 흐르는 갠지스강이다. 
바라나시는 약 3500년 동안 힌두교도의 성지이자 도시로서 그 명맥을 유지해 왔으며, 
현재는 인도 최고의 관광지이기도 하다. 
  
 
 
 
 
 
(갠지스강물을 성수라 여기는 이들..... 아래 사진은 관광객들에게 갠지스강물을 담아갈 용기를 
파는 배입니다.)

이곳에는 삶과 죽음, 삶에 대한 열망과 체념,
 아름다운 초월과 비참한 현실이 어우러져 있다. 
아침이 되면 전국에서 모여든 힌두교 순례객들이 배를 타고 강을 가로지르며 찬가를 
부르고 기도를 한다. 
또 어떤 이들은 물속에 들어가 목욕을 하고 물을 마시는데, 
그렇게 하면 갠지스 강물이라는 성수에 의해 죄가 사하여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믿음의 열정이 있는가 하면, 껍질을 반쯤 벗긴 나뭇가지로 이빨을 닦는 사람, 
웃고 떠들며 아침 수영을 즐기는 사람, 강변의 돌에 옷을 내리치며 빨래하는 사람 등 
무심하게 삶을 이어가기도 한다.
 
(해가 뜨기전 풍경.)
 
 

이승과 저승 사이를 흐르는 갠지스강
그런가 하면 죽음과 비참한 현실이 펼쳐지기도 한다. 
바라나시 성벽의 골목길에는 늘 황금색이나 붉은색 등의 아름다운 천에 
곱게 싸인 시신들이 들것에 들려 화장터로 옮겨지는데, 
시신을 나르는 인부들은 이렇게 외친다.
“스리 람 람 삿다 헤이, 스리 람 람 삿다 헤이.”
이 말은 “성스러운 라마, 라마, 그는 모든 것이 옳다. 헤이”라는 뜻으로 
장례를 치르러 갈 때 늘 외치는 소리다. 
라마는 인도인의 영웅이며 비슈누신의 화신이기도 하다. 
힌두교도들은 죽음과 파괴의 신인 시바신이 손바닥에서 만든 불이 
3500년간 꺼지지 않은 채 타고 있다고 믿는다. 
(갠지스강에 날이 밝았습니다.)
 
 
 
 
 

바라나시에는 수천년간 이어온 화장터가 두 곳 있다. 
마니카르니카 가트(Mankarnika Ghat) 화장터는 돈 많은 이들이 화장되는 곳이고, 
상류 쪽 하리 찬드라 가트에는 돈 없는 이들이 태워지는 화장터가 있었는데 
전기로로 시설이 바뀌었다. 
그 화장터에서 태운 시신의 잿가루가 둥둥 강물을 따라 떠내려가고, 
가끔은 화장하지 않은 어린아이의 시신이 비닐봉지에 싸인 채 강물에 떠내려오기도 하며, 
민물 돌고래가 갑자기 솟구치기도 한다. 
(갠지스강의 일출장면들입니다.)
  
 
 
 
 

빈민들의 화장터에서 얼마 안 떨어진 곳에는 빨래하는 이들이 있다. 
빨래가 직업인 이들은 옷을 돌에 내리치며 빨래를 하는데, 
화장터의 잿가루가 간간이 섞여 든 더러운 물이건만 상관하지 않고
 자신의 의무와 돈벌이에 충실하다. 
그 중에는 아버지의 직업을 이어받은 열 살도 안 된 아이들도 보여 
가슴이 아프고 답답하다. 
 
 
 
  

그 아이들은 평생 그렇게 세습된 직업을 이어받아 그 길을 갈 것이다. 
가끔은 병자들이 강변에 누워 있고 다 죽어가는 이들 주위에 
아이들이 몰려들어 시시덕거리며 짐승 구경하듯이 쳐다보기도 한다. 
밤이 오면 거지와 사두(힌두교 수행자)와 소들이 강변에 누워 안식을 취하고, 
적막 속에서 갠지스강은 고요히 흐르기만 한다.
강물에 들어가 목욕하면 정화돼
그래서 처음 바라나시에 온 사람들 중에는 몸서리를 치는 이들도 있다. 
멀리서 바라보는 강의 풍경과 관념 속에서 바라보는 철학과 종교는 아름답지만, 
강변의 현실은 끔찍하기 때문이다. 
그 현장 앞에서는 감상적인 삶의 허무나, 생의 집착을 버리라는 
교훈도 쉽게 읊조릴 수가 없다. 
그런 것들은 다 시간이 지난 후에야 나오는 말이다.
그러나 그곳에 오래 머물수록, 여러 번 가볼수록, 
혹은 마음을 턱 내려놓고 바라볼수록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바라나시에는 공간의 족쇄와 시간의 사슬에 묶여 있던 존재가 스르르 풀려 나가는 
묘한 혼돈의 기운이 서려 있다. 
 
(아래사진은 화장터 광경입니다... 장작 쌓아 놓은것도 보이고
시체를 태우고 있는 모습도 보이고..... )
 
 

수천년 이어온 화장터에도 빈부격차 
끝없이 이어진 성벽 안의 미로를 하염없이 걷거나, 
강변에 누워 무심하게 강물을 바라보면 문득 삶이 꿈 같고 자신이 환영처럼 보이는 
묘한 느낌을 갖게 된다. 
새벽에 수행자처럼 맨발로 강가로 걸어나가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면, 
문득 세상은 삶과 죽음이 어우러진 구천의 세계로 다가오기도 한다. 
강변 이쪽의 이승에서는 죽음이 연기로 피어오르고, 
강 건너 저승에서 떠오른 해는 세상을 다시 밝힌다. 
 
그리고 이승과 저승 사이를 흐르는 갠지스강에서 사람들은 
두 손 모아 합장을 한 채 빌고 있다. 
삶이 죽음이 되고 죽음이 삶으로 순환되는 순간, 추한 것, 더러운 것
, 불결한 것, 아름다운 것, 깨끗한 것, 신성한 것은 모두 이름을 잃고 
하나의 실재 속으로 사라지는 그 순간, 
세상은 한없이 성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이처럼 어떻게 마음먹느냐에 따라서 바라나시는 지옥과 극락과 
혹은 구천의 세계를 오가는데, 그 묘한 매력 때문에 오늘도 바라나시에는 
순례객과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있다. 
........
  글      :  여행 작가 이지상님.
사 진    :  민여울.
날씨 쌀쌀해졋네요.
아침 출근길에는 따스한 옷차림으로 길 나서세요.
출처 : 여울이의 사진일기
글쓴이 : 민여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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